사랑하는 그대에게_#1 160206_사랑하는 그대에게

#1

 

끼이익- 철컹-

 

쇠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철로 만든 대문이 닫힌다. 여자가 남자의 손을 이끌어 마당에 들어선다. 여자의 걸음이 비척거리는 것이 술을 많이 마셨나 보다. 남자가 여자의 허리를 감싸 부축한다. 집에 왔다는 안심이 여자의 몸에서 힘을 빼앗았는지 어느 새 품에 달콕 안긴 모양이 된다. 조심하라며, 남자는 팔에 힘을 주어 더 세게 안는다. 영하의 날씨에 헐떡이는 둘의 숨은 입김이 되어 사방으로 흩어진다. 무너져내리는 여자의 몸을 안아 추켜세운 남자의 손이 여자의 가슴을 움켜쥐고, 중심을 잡으려 뒤로 내민 여자의 엉덩이에 남자의 허리춤이 바싹 닿는다. 남자는 지레 엉덩이를 뒤로 빼지만 취한 여자는 알아채지 못하는듯 하다. 남자는 낑낑대며 여자를 일으켜 세워 건물 입구로 향한다. 건물키의 번호를 세 번 만에야 맞게 누른 여자는, 원룸 문 앞에 서서 남자를 밀쳐낸다. 가방을 뒤져 열쇠를 찾는 소리가 부산스럽다. 불안한 눈으로 뒤에 지켜 서 있던 남자는, 다시 중심을 잃어버린 여자를 뒤에서 껴안아 부축한다. 얼굴이 맞닿은 채, 둘의 취한 호흡이 거칠어 좁은 복도를 울린다

 

"커피 마시고 가요. 술좀 깨야지."

 

코트를 벗어 방 안에 내팽개친 여자가, 현관에 한 발로 서서 롱부츠를 벗으며 이야기한다. 어슴프레 켜진 현관 불빛이 여자의 치마 밑으로 뻗어진 스타킹에 반짝이고, 깊게 파인 스웨터 사이로 젖가슴의 굴곡이 보인다. 밑에서 위로 옮겨지던 남자의 시선이 야릇하게 굽어지는 여자의 눈에 가 닿는다. 남자는 붉어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고, 운동화 뒤축을 밟아 신발을 벗는다


찰칵, 현관문이 남녀를 삼키고 입을 다문다.

 


 

종대는 비로소 참았던 숨을 몰아 내 쉰다. 한꺼번에 터져 나오는 호흡이 목젖에 걸려 이상한 쇳소리를 낸다. 불 꺼진 과일가게 천막의 어둠에 몸을 숨긴 채, 여자의 목소리와 현관문이 닫히는 소리를 들은 직후다. 심장의 혈류가 거칠게 타고 올라와 고막을 두드려댄다.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온대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다.

 

'켜져라 켜져라 켜져라 켜져라, 켜라 켜라 켜라 씨발 좀 켜라.'

 

방 안의 불이 어서 켜지길 간절히 빌어 보지만, 오 분 넘게 불은 켜지지 않는다. 애써 숨을 골라 내고 잰 걸음으로 길 밑 편의점에 내려가 말보로 레드와 라이터를 하나 사 나온다. 뒤꿈치를 들어 발소리를 죽이며 여자 방의 창문과 가장 가까운 담 앞으로 가 주저 앉는다. 담배 한 대에 불을 붙여 입에 물고, 방 안에서 나는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불은 여전히 꺼진 채다. 독한 연기에 터져 나오는 기침을 애써 참아낸다. 난생 처음으로 폐 깊이 담배 연기를 들이마셔 본다.

 

어려서부터 주변엔 흡연자가 많았다. 중학교 때까지 아빠는 집 안에서 담배를 태웠었고, 한 동네에 사는 불알 친구는 유등천 물가에서의 회동 때마다 줄담배를 피워대곤 했었다. 항상 같이 붙어 다니는 대학교 같은 과 4명의 친구들 중에선 종대만이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 가끔 술자리에서 장난스레 겉담배를 하곤 했지만 '집안 내력이야. 담배 피우면 금방 죽는대.' 등의 핑계를 대며 권유를 거절해 왔다. 또래에 비해 조숙했던 불알 친구가 취한 끝의 술자리에서 존재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며 깊이 빨아들이던 말보로 레드가 생각난다. 고작 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 스물도 안 된 소년이 뭐 그리 걱정할 일이 있다고 줄담배를 피워 댔는지는 몰라도, 발목 밑으로 깔리던 안개와 어우러져 사그라드는 그 때의 담배 연기는 사뭇 인상적이었다. 중학교 때부터 담배를 피웠다는 그 친구는, 말보로로 시작해 디스로 빠지는 게 흡연의 정도라고 주장했다. 처음에는 멋부리고 싶은 마음에 가장 핫해 보이는 말보로, 그것도 레드를 피우며 담배를 배우지만 나중에는 결국 합리적인 가격과 (군 디스에 비해) 월등한 퀄리티를 가진 국산 담배, 디스로 정착하게 된다는 말이다. 이 디스 성애자의 말이 관념적으로 뇌리에 박혀 있었고, 디스는 없어 보인다는 무의식을 따라, 종대가 편의점에 들어가 난생 처음으로 구매한 담배는 말보로 라이트였다. 종대는 지금 신림동의 어둑한 골목 한구석에 있는 원룸 담벼락 앞에 앉아, '언젠가 나도 디스를 피우게 될 것인가' 따위를 고민하며 줄담배를 태우고 있다.

 

첫 모금을 빨아들일 때 일어났던 현기증이 세 대째를 다 태우고 나니 좀 사그라든다. 현기증을 참아내려고 다리 사이에 고개를 푹 쳐박고 있는데, 이번엔 역한 담뱃내가 속에서부터 올라와 헛구역질을 일으킨다. 왼쪽 관자놀이가 지끈지끈 아파온다. 이게 추위 때문인지 담배 때문인지 구분이 되질 않아 아까는 어땠었지, 하고 기억을 더듬어 본다.

 

갑자기 섭취한 니코틴 때문에 속이 쓰려오고, 손이 덜덜 떨리기 시작한다. 뭔가 따듯한 걸 마셔야겠다는 생각에 아까 갔던 편의점으로 다시 들어간다. 온장고 앞에서 커피를 고르고 있는데, 카운터의 점원이 안절부절 못하며 눈치를 살핀다. 조지아 블랙 하나와 레쓰비를 집어 카운터에 올려놓는 찰나, 점원이 잠시만 화장실에 다녀오겠다고 외치고는 부리나케 편의점 밖으로 뛰쳐나간다. 그렇게 하시라는 대답을 종업원의 등 뒤에 던지고, 종대는 온풍기 앞으로 가 손을 녹이며 멍하니 따듯한 바람을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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