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7 151101_강원도

 "인생이 살 만한 가치가 없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결국 서른살에 죽는 것이나 예순 살에 죽는 것이나 별로 다르지 않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그 어떤 경우든 당연히 그 후에는 다른 여자와 다른 남자들이 살아갈 것이고 그런 일은 수천 년 동안 계속될 것이다. 아무튼 지금이 됐건 이십 년 후가 됐던 언제든 죽게 될 사람은 바로 나라는 사실보다 분명한 것은 없다."


 

#7.

 


삼척 터미널은 여전히 그 특유의 고즈넉한 분위기를 간직하고 있다. 3년 전 여름, 혼자 떠나 왔던 도보여행 때의 모습 그대로다. 터미널 뒤편으로 내가 흐르고, 무릎까지 올라옴직한 그 냇물을 푸른 산이 웅장하게 감싸 안는다. 터미널이 아니라 절이 있었대도 어색하지 않을 만한 장소다. 버스에서 내려 담배를 한 대 태우며 늦봄의 햇살을 만끽한다. 날씨가 더럽게 좋다. 광산업의 쇠퇴와 함께 죽어가는 도시라고 불리우지만, 사람들의 발길이 줄어든 대신 다양한 생명의 보금자리 역할을 수행하는 곳이기도 하다. 이어폰에서 재생되고 있는 Calvin Keys Renaissance가 마치 태동하는 삶의 울음소리처럼 들린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갑자기 오한이 들어 몸이 부르르 떨린다. 밍밍해진 암바사를 들이키니 좀 낫다.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소방서 위치추적을 피해 황급히 도망쳐 왔지만, 여정 없는 여행자에게 특별히 갈 곳이나 할 일이 있는 건 아니다. 담배를 다 태우고 터미널 옆에 붙어 있는 오락실에 들어간다. 3년 전과 똑같은 자리에, 왼쪽 킥 버튼이 여전히 작동하지 않는 채로 방치되어 있는 철권 태그 오락기에 앉는다. 폴과 라오를 골라 최대한 시간을 끌며 한 판 한 판 이겨나간다. 킥 버튼이 하나 고장 났어도 상관은 없다. 질 것 같으면 약발로 적을 공중으로 띄운 다음 옆으로 굴러 일어나는 틈을 타 필살기를 먹이면 되니까.

 

오전의 오락실엔 위 아래 짝을 맞춘 추리닝을 멋스럽게 걸친 아저씨 한 명이 구석 자리에서 경품 룰렛을 튕기고 있다. 바닥에 쌓여 있는 담배 꽁초의 개수로 봤을 때 오락실이 열리자 마자 앉아 지금까지 게임을 하고 있는 모양이다. 왼손에 백 원짜리 동전을 서너개 쥐고 드르륵 비비며 오른손으로는 베팅 버튼을 신경질적으로 눌러댄다. 무슨 생각이 들었나, 오락실 한 켠 공간을 전부 차지할 만큼 많은 경품룰렛 게임기 중 하필 바로 옆자리에 앉는다. 아저씨는 그 덕에 왼 무릎 위에 얹어 뒀던 오른쪽 다리를 내려놓을 수 밖에 없게 되었고, 왜 다른 자리 놔두고 옆에 와서 귀찮게 하냐는 뜻을 강력하게 담은 눈빛을 내게 보낸다.

 

"아저씨, 이거 어떻게 하는 거에요?"

 

씨익 웃으며 물어 보지만, 아저씨는 힐끗 쳐다보고는 묵묵 부답이다. 그저 무심히 버튼을 두드리고 있을 뿐이다. 당황하면 지는 게임이니, 나는 동전을 넣고 무심히 베팅 버튼을 누른다. 막상 앉고 보니 별 재미는 없다. 이삼만원 쯤 가지고 시작해야 그나마 딸 수 있는 시스템이다. 역시 도박은 나랑 별로 맞지 않는 것 같다생각 없이 연달아 베팅 버튼을 눌러 남아있는 코인을 전부 써 버리고 자리를 뜬다. 아저씨는 그 새 답답했었다는 듯, 내가 일어나자마자 담배에 불을 붙인다.

 

햇살은 더 높이 떠올라 내 티셔츠를 적신다. 하필 입고 온 게 얇은 회색 면티다. 겨드랑이를 올려 살피니 역시나, 등고선 모양의 얼룩이 져 있다. 방법이 없어 벗었던 가디건을 겹쳐 입는다. 흔한 음악 소리 하나 없는 조용한 도시 덕에 냇물은 아무런 방해를 받지 않고 졸졸 소리내며 흐른다. 담배를 하나 물고 섰는데, 문득 3년 전 자전거를 빌렸던 태권도장이 떠오른다. 생수를 한 병 사 들고 기억이 닿는 대로 걸음을 걷는다. 골목을 돌아 이 쯤이었지, 싶던 순간 눈 앞에 간판이 나타난다. 2층의 열린 창문 사이로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기합 소리가 불규칙적으로 들리고, 간간이 웃음과 비명 소리가 섞여있다. 아마도 쉬는 시간이거나, 자유 대련을 하는 중이겠지. 1층 복도에는 3년 전 그 때처럼 아이들의 자전거가 잔뜩 세워져 있다. 여전히 자물쇠가 채워지지 않은 자전거가 많다.

 

담배가 떨어져 사거리의 큰 편의점으로 들어간다. 담뱃값을 치르려 지갑을 여니 로또 뭉치가 보인다. 한 주에 30만원 어치 넘게 로또를 샀던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적중 확률이 70%가 넘는다는 인터넷 싸이트에서 받은 번호들을 정성스레 찍었고, 평소 같았으면 랜덤으로 선택했을 나머지 번호들도 간절한 마음으로 직접 골라 마킹했다. 10만원인 구매 한도 때문에 동네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로또 판매점을 찾아 금요일 밤을 보냈다. 그리고 고대하던 토요일 밤, 명옥이 잠든 틈을 타 침대 발치에서 조용히 결과를 확인했다. 그렇게 간절하게 기도하고, 혹여 꿈이라도 꾸게 되면 눈을 뜨기가 무섭게 해몽을 찾아봤었는데, 이번 주도 역시나 별 게 없었다. 오천원 짜리 몇 개. 로또 싸이트에서 광고로 내 놓은 구매자들의 당첨 수기가 괜히 원망스러웠다.

 

당첨금에 얼마만큼을 더해 새로 살지 고민하는데, 점원이 당첨용지와 함께 오만원권을 섞어 내민다. 의아해 하며 용지를다시 확인해 보니, 3개만 맞았다고 체크해 뒀던 한 조합이 4개나 맞았다. 불 꺼진 곳에서 두근거리며 확인을 했었기 때문인지 숫자 하나를 놓쳤었나 보다. 뜻밖의 행운에 싱글벙글하며 편의점을 나온다. 담배를 세 갑이나 샀다. 편의점 앞에 서서 담배를 피우는데, 길 건너 대각선으로 맞은 편에 까페 베네가 보인다. 공돈이 생겼다는 생각에 배에 허기가 돈다. 갈릭브레드랑 아메리카노를 시켜야지. 담배를 문 채로 길을 건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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