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19 151101_강원도

#19

 

, 하고 목덜미에 충격이 느껴진다.이제 이렇게 끝나는 거겠지. 드디어 자유로워 질 수 있겠지. 방을 넣어준 아줌마에겐 약간 미안한 마음이 든다. 그래도 더럽진 않을 테니, 구조대원들이 치우고 나면 바로 방 받을 수 있을 거에요그런데 생각보다 나쁘진 않은 것 같다. 가죽이 조금씩 조여들며 목을 더 압박하지만, 아직 의식은 멀쩡하고 방 안의 상황이 명료하게 보인다. 테이블 위에는 어제 벌인 술판의 흔적이 남아 있다. 맥주병은 비워져 제 멋대로 뒹굴고 있고, 냉동 닭강정은 벌어진 뱃속에 젓가락을 꽂고 있다. 봉지 안에 몇개 남은 게 없어 의아하다. 술에 취해서 또 막 집어 먹었나 보다. 창문쪽을 보고 매달릴걸, 불이 켜지는 걸 보면서 불을 끌 수 있었을 텐데노트북으로 만들어 놓은 비트를 틀어 놓을 걸, 그럼 나중에 누가 보면 멋있다고 할 수도 있을 텐데. 얼마나 더 있어야 괴로울려나 살짝 겁도 난다. 몸에 힘을 빼고 팔다리를 늘어뜨린다. 지이익, 가죽이 목을 더 심하게 조인다. -. 하고 숨을 뱉는다. 나도 모르게 숨을 참고 있었나 보다. 폐 속에 가뒀던 숨이 빠져나가고 다시 들이킬 순서다. 하지만 조여든 가죽이 턱 밑을 심하게 눌러 공기가 들어오지 않는다. 입에서 이상한 소리가 난다. -, , 쇠가 긁히는 소리가 난다. 괴롭다. 아주 잠깐 후회한다. 방 안의 닭강정 봉지를 뚫어지게 보고 있었는데, 형상이 점점 뿌얘진다. 눈물이 나는 건지 잘 구분이 되지 않는다. 손발을 버둥거려 보지만 곧 눈 앞이 캄캄해 진다.

 

화면이 꺼진다. 온통 암흑 뿐인 사방에 간헐적으로 빛이 비친다. 빛은 의식이 멀어질 쯤이면 확 하고 순간 켜졌다가 일순간에 사라진다. 경고등이 켜지듯, 노란색, 빨간 색흰색의 세 가지 빛이 반복해 점멸한다. 저 밑에 야구장에선 깡, , , 하는 배팅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다. 그래. 빛의 점멸은 이 소리에 맞춰 춤을 추고 있었다. 둔탁한 쇳소리는 점점 커지고, 빛의 군무는 점점 바닥으로 깔려 자리를 잡는다. 쇳소리 사이로 날카로운 현의 떨림이 느껴진다. 사람이 지나가면 발목이 잘리는 날카로운 쇠 줄이다. 작은 소리로 음악이 연주되기 시작한다. 기타보다 가늘고 유연한 시타 소리가 들린다.현은 끝을 모르게 길게 늘어졌다, , 하는 소리에 급히 움츠러든다. 그 떨림이 완급을 조절하며 높낮이를 달리 한다. 아마, 솔이나 솔 샵 정도의 음일 거다. 현이 움츠러들면 순식간에 몇 옥타브를 뛰어 오르지만 결국엔 같은 음이다. 음과 음 사이에 굵은 현악기 소리가 침투해 슬픈 곡조를 연주한다. 바닥에 뱀처럼 깔려 있던 노란 빛의 몸뚱아리는 드럼이 된 쇳소리에 맞춰 꿈틀댄다. 아니다. 소리에 빛이 반응하는 게 아니다. 거대한 불꽃놀이를 멀리서 볼 때처럼 빛이 먼저 번지고 소리가 따라온다. 이제는 빛이 소리를 이끌고 있다.

 

멜로디는 엉키고 흩뿌려져 오케스트라를 이룬다. 어릴 때 우유 광고에서 보던 왕관 모양의 우유방울이 희고 흰 사분면 위에 흩어진다. 방울은 면에 닿으며 청명한 소리를 낸다. 현은 채찍처럼 면을 때리며 길고 가늘은 떨림을 낸다. 하나 둘씩 쏟아지기 시작한 방울은 어느 새 강물이 되고, 강물 위는 크고 작은 왕관들이 빼곡하게 들어선다. 흰색 강 위에 스콜이 거칠게 내린다강 건너에는 몇 명의 낚시꾼들이 우산도 없이 서서 릴을 던진다. 도로로로록. , 으이쌰. 지이이이이익. 첨벙. 그들이 내는 소리가 음악에 더해진다. 갑자기 한 명의 낚시꾼이 대어를 놓친 듯, 욕지거리를 뱉으며 온 힘을 다해 낚싯대를 물 위에 내려친다. 낚싯대는 채찍처럼 휘어졌다가 쏜살같이 펴지며 날카롭게 강물을 파고든다. 가늘은 낚싯대가 만든 파도는 꿀럭거리며 몸집을 불려 달려오고급기야 굉음을 내며 강 위에 흩어져 있는 왕관들을 삼킨다. 고조되는 멜로디, 끝나지 않을 것 같은 화음이 반복된다. 파도는 강 한가운데에서 휘몰아치며 회오리가 된다. 거대해진 토네이도는 주변의 강물을 전부 빨아들이고, 강 둑을 넘어 집과 차들을 하늘로 날려보낸다. 멈칫거리는 사이 내앞에까지 달려온 회오리가, 아차 하는 사이에 날 삼킨다. 그안에, 내가 땅에 버리고 왔던 모든 것들이 있다


삼성 노트북, 반쯤 남은 소주병, 준호가 준 오디오테크니카 헤드폰, 지브라 패턴의 러그, 준모의 씨디먹돌이가 죽은 개집, 아이폰 3gs, 낡은 검정색 구두, 아빠의 화물차, 조카에게 선물한 RC, 왼손잡이용 미즈노 글러브,명옥이의 치아 미백 테이프, 부러진 야구 배트, 세탁소 옷걸이, 멍청이 똥고양이 황금이와 금실이, 백부장의 안경, 사무실 기름걸레, 고시원 주방의 라면, 은숙이의 편지, 성 체육관 스티커, 6번 줄이 끊어진 기타, 매경 테스트 문제집, 동방에서 도둑맞은 베링거 믹서, 삼척 건달 아저씨의 잠든 뒤통수까지. 빙글빙글 돌아가는 회오리 속에 나는 조각나 파편이 되어 떠 다닌다. 온갖 것들이 부딪혀 발가벗은 내 온 몸에 생채기를 낸다. 멍청한 금실이는 온몸에 털을 추켜 세우고 손을 뻗어 내 목을 조른다. 몸에 붙은 거추장스러운 것들을 떨쳐내려 악다구니를 쓴다. 소리를 지르려 하지만 봉인된 목에선 쇳소리가 난다. 회오리는 끝끝내 그 모든 것들을 내게 닿게 해 시뻘건 피가 온 몸에서 배어 나온다. 죽을 힘을 다해 회오리의 정상으로 기어오른다.

 

맨 꼭대기에 올라 난간 너머로 발을 늘어뜨리고 앉는다. 정상에 오르니 귀를 찢을 듯 휘몰아 치던 음악은 사그라 들었지만 저 밑에선 아직도 드럼이 둔탁하게 울린다. 고개를 내밀어 밑을 살피니 차들이 도로를 가득 메우고 빵빵 소리를 낸다. 삼호빌딩 옥상에 앉아 바라봤던 그 거리의 모습이다. 입에서 이상한 게 흘러 손으로 닦아낸다. 목이 졸려 흐른 침이 난간 밑 천길로 뚝, , 떨어진다. 으드득, 하고 뼈가 뒤틀리는 소리가 나더니, 내가 앉은 난간 가장자리가 툭, 하고 무너진다. 나는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그대로 밑으로 추락한다. 고도가 낮아질수록 음악 소리가 커져 곧 머리가 폭발할 듯한 굉음이 이어진다. 가장 세게 스네어를 몰아치고, 팽팽하게 당겨진 줄이 끊어져라 현을 튕긴다. 급기야 팽팽한 줄에 흠집이 나고, 가장 얇은 줄부터 하나씩 끊어지기 시작한다. 절대 끊어지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든든하게 버티던, 내 팔뚝보다 굵은 마지막 현이 반쯤 끊어져 건들거린다. 더러운 소리가 귓청을 때려 토가 나올 것 같다. , 하고 마지막 줄이 끊어지는 순간, 세상이 무너지는 거대한 소리가 난다. 땅에 부딪힌 내 머리가 땅콩처럼 박살이 난다.

 

눈썹 위로 머리를 잃었다. 쭈꾸미 볶음이 사방으로 튀어 흰 사분면이 붉게 물들었다. 모든 음악은 멈췄고, 뺨 위로 춘풍이 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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